/untyped

책임, 이해

2026-09-18

태그: musing

이해가 곧 책임이다. 요즘 내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이다.

내 이해의 범위를 벗어나면 뭘 근거로 선택해야할지 알 수 없게 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선택은 내려야하지만 이해가 부족하면 선택의 신뢰도도 줄어든다.

그래서 추상화가 중요하다. 내가 만지는 모든 걸 이해할 순 없기 때문에, 그 근처의 것들은 적절한 추상화로 감싸서 이해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잘못된 추상화보다 중복이 훨씬 싸고, 추상화에 구멍이 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마치 베이즈 정리에서 사후 사건을 통해 가설의 신뢰도를 계속 갱신하는 것처럼, 내가 지금 가진 추상화를 가지고 현실과 부딪혀 계속해서 이걸 뜯어고치면서 추상화(멘탈 모델)를 갱신해나가야 이해의 범위를 넓힐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넓힌 이해가 곧 책임이다. 문제가 터졌을 때, 이해를 바탕으로 다음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나만이 책임질 수 있다. 내 결정에 책임을 다하려면 내가 지금 뭘 근거로 행동하려는지는 이해하고 있어야지. 이해를 외주 주는 순간 책임을 회피하고 남에게 떠넘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살짝 옆길로 새자면, 공대 출신 CEO들은 (사실 모든 사람은) 자기 전문성을 벗어난 분야에 대해 함부로 강하게 말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경제, 사회,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면서 몇년 안에 인류가 멸종할 거라느니 하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을 듣고 있자니 참 불쾌하다. 모순적이게도 내가 쓴 이 단락 또한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겠다.

아무튼 내 경험을 돌아보니, 확실한 건 동반되는 고통만큼 이해도 깊어졌었다는 것이다. 운동도 공부도 어렵고 힘들어야 늘었던 것 같다. 책, 수업, 영상, 이런 매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이걸 이해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갖고 하기 싫고 때려치우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 나갔을 때야말로 비로소 뭔가 얻었었다. 지금의 LLM은 이 싫은 느낌을 마취시켜 버린다. 약간의 이해만으로도 엄청난 능력을 가지게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래서 LLM이 뱉은 것과 내 이해 사이의 격차에 자꾸 부딪힌다. 원래는 꾸역꾸역 삽질해가면서 체득할 수 있었는데, 그 과정을 LLM한테 먹혀버린 것이다. 덕분에 속도는 빨라졌지만 이해는 들쭉날쭉하다. 심지어 어떤 영역은 내가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unknown-unknown 이 생기기도 한다. 이게 제일 큰 리스크다.

결국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한다. 골고루 잘 챙겨 먹고 하루 8시간 자고 몸에 안좋은 거 피하고 주 3회 1시간 씩 운동하면 건강해지는 거 나도 안다. 아는데 하기 힘든 것들이 있다.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나.